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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tion :라오스
Author : 컴퓨터학과 01학번 남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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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학에는 책상 밖으로 떠나 보자!"

 

"나는 이렇게 윤경이를 집에 데려다 줄 때면, 내가 예전에 사랑하였던 그 후배 생각이 나. 그 친구도 내가 항상 집에 데려다 주곤 했거든"

 우리 집이 다다렀음을 알리는 로타리를 자전거를 타고 돌며 이 대화를 나눈 밤, 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저절로 시야에 들어 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언니와의 대화는 내 마음에 쏟아져 내리는 별과 같은데 우리의 풍경 또한 그러하니 이보다 황홀한 것은 없다.

 누군가에게 나의 라오스 이야기를 들려 주기 위한 준비를 한답시고 지난 1년간(2004년 4학년 1학기 이후, 휴학 후 1년간 라오스에서 활동.)의 라오스에서의 일기를 통하여 삶을 돌아 보니, 따뜻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가장 소중하다. 그 1년 동안 거자필반, 회자정리라는 말을 가슴 깊이 느꼈다. 특히,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컴퓨터교육 봉사단원의 일원으로 라오스에 발을 디딘 만큼,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인연을 가질 수 있었던 행운이 함께한 지난 1년이었다. 라오스에서의 나의 임무는 컴퓨터교육, 나의 활동지역은 라오스의 작은 도시 사반나켓이었다. 사반나켓에서 만나서 사랑했던 한 선배를 회고하며 쓴 나의 일기를 소개하며, 나의 라오스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사반나켓의 거리

 나는 가진 것이 많지는 않지만,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모습을 이웃과 나눔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한 시도가 담긴 노력의 결과 나는 국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봉사라는 활동을 통하여서는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었다기 보다는 내가 얻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많았다. 활동을 통하여 찾게 되는 나의 수 많은 단점-편견, 오만, 근시안 등-의 발견을 하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을 감사하게 여기었다.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한 해외봉사는, 그 일환에서 출발하여, 나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희생의 삶을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라오스 사람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기만 한 너무나 감사한 경험이다.

 라오스 도착 후 2개월간의 라오스어 교육 및 현지적응훈련이 끝나자, 나는 사반나켓주청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라오스의 남부지방 사반나켓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

현지의 버스
라오스의 대중적인 탈것, 뚝뚝이

 사반나켓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버스를 타고 6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다. 라오스에서의 버스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외국인들이 주로 타는 좋은 버스와 현지인들이 주로 타는 현지인 버스이다. 좋은 버스를 타면 에어컨이 있다. 가격이 저렴한 현지인 버스를 타면, 재미있는 풍경을 접할 수 있다. 버스 안에서는 닭이 요란하게 울어대고 버스가 버팀할 정도의 무거운 짐을 실은 버스 윗칸에서는 물고기망에서 비린물이 어깨 위로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사반나켓 주청에서의 나의 임무는 컴퓨터교육이었다. 하지만 컴퓨터교육을 위한 컴퓨터실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실질적인 임무는 활동 기관에 따른 것인데, 활동 기관이 대학교이거나 직업훈련소와 같은 경우에는 그 임무가 명확한 경우다. 하지만 주청과 같은 곳에서 활동하게 될 경우에는 간혹 단원의 활동이 모호한 경우가 있다. 나는 오히려 이러한 나의 경우를 즐겁게 생각하였다. 나에게 주어진 명확한 일이 없다는 것은, 곧 나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사무실 입구.(왼쪽 천장 끝에 반원모양의 벌집이 보인다. 라오스에서 벌집은 행운의 상징)
비오는 날의 사반나켓. 나의 사무실은 사반나켓에서 가장 높은 주청 가장 꼭대기층인 4층

 나의 사무실은 주청의 서버관리실이었다. 주청은 이미 사내 네트워크망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직원은 네트워크에 관한 이해도가 높았다. 또한 그만큼 컴퓨터 사용에 능숙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컴퓨터 전원을 어떻게 켜는지를 모르는 직원도 있었다. 초기에 이러한 상황은 내가 수용하기 힘든 부분도 없지 않았다. 나의 주전공인 프로그래밍과는 전혀 상관없는, 컴퓨터의 단순활용에 관한 교육부분이 나의 임무 범위가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버리고 비우는 마음으로 라오스를 찾았음을 되뇌이며, 그 임무가 어떠하든 나의 마음먹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어서오세요. 사반나켓주청입니다.] 우리가 만든 주청홈페이지 첫 화면. 왼쪽상단에는 라오스국기, 오른쪽상단에는 공산당기
 처음 두 달 동안은, 서버 관리실의 유일한 전산직원 시토와 함께 사반나켓주청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웹페이지를 처음 만들어보는 시토와 나는, 스터디부터 시작해서 호흡을 맞춰 나갔다.

 이후, 본격적으로 공무원 컴퓨터교육을 계획하였다. 매일 시토와 회의를 하며, 컴퓨터교육을 위한 환경구축에 힘을 모았다. 주청의 사용하지 않는 방 하나를 컴퓨터교육실로 정하고, 주청에서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컴퓨터를 모으고 모아 6대를 준비하였다. 모든 일은 동료 시토가 발벗고 나서서 도와 주어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주청 산하에 있는 기관에 공문을 보내어, 기관 당 두 명의 교육자를 추천받았다. 교육 내용은 워드와 엑셀이었다.

“아짠, 짜오 바오 파싸 라오 깽 너~ 짜오 콘 사완 테테~”(선생님, 당신 라오스말 잘하는군요~ 당신 정말 사반나켓 사람같아요~)

 40의 나이에 가까우신 분들이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 것도 감사한데, 라오스말을 잘한다는 칭찬까지 받으니, 비록 표현을 잘 못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날도 적지는 않았지만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나의 라오스어 구사력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라오스어는 우리 주청의 아줌마수다그룹과 친분을 쌓으면서 일취월장하였다. 나에게는 빌라이썬이라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비서실에서 일하는 빌라이썬은 사무실안에서나 사무실밖에서나 나를 물심양면으로 챙겨주고 도와주는 친구였다. 빌라이썬과 붙어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빌라이썬과 친한 아줌마수다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곧 점심시간 이후 매일 1~2시간 동안 라오스 사람들과 이것 저것 함께 이야기하게 된 것이, 나의 라오어 구사력을 한층 돕게 된 것이다 .

나의 든든한 단짝 친구, 빌라이썬. 라오스에서는 오토바이가 대중적인 서민 교통수단이다. 승용차를 가진 사람은 부자다.
빌라이썬과 함께 참석한 라오스의 종교(소승불교) 축제, 은단지 안에 꽃과 돈과 떡과 쌀을 준비하여 스님이 지나가면 보시한다.
 아줌마그룹에 속하면서, 먼 시골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1박 2일의 결혼식음식만들기 지방원정의 일원이 되는 등, 다양한 라오스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감기는 눈커풀을 억지로 끌어 잡아 당겨, 뜬 눈으로 밤을 지세우며 결혼식 피로연에 쓰일 음식을 만들었다. 밤이 깊어진 새벽에는 남녀가 짝을 지어 원을 만들고 라오스의 전통춤 “난봉춤”을 추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해가 떠오르는 5시쯤이 되면, 바로 결혼식을 시작한다. 그 지방원정 이후에는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외국인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렵게 될 정도가 되었다.
“짜오 피셋 테테~” (넌 정말 특별해~) 라오스 사람들과 허물없이 잘 어울리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게 들려준 가장 기분좋은 칭찬이다. 지난 1년간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
대나무 평상에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결혼식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소금에 절인 물고기가 보인다.
아줌마수다그룹의 일원인 너이 언니의 라오스 전통 결혼식. 전통 결혼식은 새벽 5시에 한다. 며칠 전, 나의 친구 빌라이썬과의 전화통화에서 너이 언니의 임신소식을 들었다.

 각 일반봉사단원은 임기기간 동안 단 한번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에게 지원되는 2500달러(약 250만원)이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주청장과의 회의 끝에 컴퓨터 및 무선네트워크 환경 구축을 지원하게 되었다. 라오스에서 한 지방에 2500달러가 지원되는 것은 적은 액수가 아니어서인지, 사반나켓지방방송사에서 컴퓨터와 무선네트워크장비를 기증하는 날 촬영을 왔다.
지원물품을 기증하던 날 라오스전통의상인“씬"을 입고

 라오스에서의 나의 임무는 라오스사람들에게 컴퓨터교육을 통한 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다기 보다는 그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얻었기에, 내가 과연 봉사를 하고 왔는가에 관한 의문이 들기도 하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에는 나의 사랑하는 수녀님이 계신다. 나는 사반나켓의 선배를 통하여 재정사정이 좋지 않은 수녀원을 알게 되었다. 수녀원에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고아들, 약 20명이 수녀님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해맑은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수녀원의 셋방살이로, 나는 다달이 수녀님께 거액의 월세(약30만원, 라오스에서는 거액이다.)를 낼 수 있었다. 수녀님네는 나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위한 숙소 신축공사를 완공하였다. 나는 새벽 4시에 시작되는 수녀원의 아침이 힘들기도 하였지만, 마치 순백의 장미꽃과 같은 마음씨를 가지신 여러 명의 수녀님들과 아이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으로 나는 마음에 여유를 찾았고, 흔히 도시인이 가지고 있는 불안함과 같은 마음의 병을 치유받았다.

우리 수녀원 울타리 밖에서 낚시를 하는 아이들. 울타리밖으로 넘어 나온 큰 잎은, 바나나잎.

울타리 안이 나의 수녀원집. 야자수가 멋있다.

2층, 창문이 닫긴 곳이 내 방.

나무집인 내 방 전경, 햇살이 방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오후의 이 곳은 정말 아름답다. 분홍커튼은 신사못 수녀님이 예쁘게 달아주신 것.

 무엇보다, 라오스에서는 나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일상의 아주 소소한 일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매일 부지런히 일기를 쓰고 “나”를 생각하는 일을 즐겼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난 어린 아이의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지만, 이전의 경솔하기 짝이 없던 “나”에 비하여, 스스로에게 조금 더 자신있는 “나”가 되었음은 확실하다.

나의 사랑하는 신사못 수녀님, 강아지 두 마리는 내가 한국어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 “기쁨”과 “사랑”.

<2005년 2월 일기>
 어제 딴생각을 하면서 가다가 울퉁불퉁한 길의 모래에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넘어질 적에 잘못 설정한 다리 자세때문에 아부지가 아껴주시던 나의 '아부지 붕어빵 다리'의 무릎이 그만 많이 까지고 말았다. 상처의 가운데 부분의 분홍색 살코기에서 이틀 째 진물이 멈추지 않는다. 마데카솔을 발라도 약이 겉도는 것으로 보아 이 가운데 부분이 진정되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할 모양이다. 부드럽기만 한 이불의 촉감이 이미 상처난 나의 무릎에는 더 이상 관대한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상처는 주변의 모든 것을 다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탁자 모퉁이에 무릎을 많이 부딪히는구나, 샤워할 때 무릎을 닦는구나, 매 순간의 습관적인 행동을 느낄 수 있다. 상처의 가장자리는 다친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딱지가 앉았는데, 이것은 상처라고 할 수도 없다. 무릇 상처라 함은 이불에 스쳐지는 고통으로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새울 정도는 되어야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야 상처가 나기 전의 내 건강한 몸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테고 빠른 시일 내에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볼 수도 있을테고 앞으로 다시 같은 실수로 상처날 일을 만들지 않기를 다짐해볼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상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스쳐갔는 듯 스쳐가지 않았는 듯 하는 시시한 상처보다는 진물에 며칠을 괴로울 이 진한 상처를 택하겠다.

  나는 상처가 두렵지 않다. 그것이 두려워 움츠리려했다면 그것만큼 바보같아 보이는 행위도 없을 것이다.

한국으로 떠나는 나를 위해 라오스 친구들이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라오스 전통 의식인 “푸켐”을 해 주었다. 빨간티셔츠를 입은 나의 팔에 둘둘 감긴 것은 흰색 실이다. 한 사람씩 팔목에 실을 감아주며 “행복한 일이 가득해라.” “잘 생긴 남자친구 만나라.” “돈 많이 벌어라.” “건강해라.” 등의 축복을 해 준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푸켐을 하면서 모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느 상황에서나 힘든 일과 기쁜 일이 공존한다. 마음에 부담을 느낄만한 힘든 일을 당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일을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상처나 고통은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다른 형태의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라오스 생활을 통한 이러한 사소한 사고의 전환은 나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었다. 적어도 지금은, “게으름”과는 다른 의미의 “여유”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가 기간 동안 여행한 라오스 북부의 휴양지, 방비엔.
사반나켓에서 바라본 메콩강. 강건너 저 쪽은 태국의 “묵다한”지역이다.

 때묻지 않은 천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마음을 열어 사랑을 나누었던 지난 1년의 라오스 생활에 대한 기억은,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이다. 내가 중심이 되는 짧은 기간의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나는 성장하였다. 그리고 다양하게 사고하게 되었다. 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책과 이야기를 통하여 느끼는 간접 경험도 좋지만, 직접 경험하며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보는 것은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늦은 나이의 졸업을 걱정하시며 라오스행을 반대하시던 아버지의 우려를 뒤로 하고 떠난 모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으로 많은 것을 얻었을 뿐 아니라, 나의 미래를 함께 할 좋은 기업에 취업도 하였다. 독창적인 생각과 독특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 이동통신회사에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서류 전형, 인적성검사 시험 전형, 실무/인성/토론 면접 전형, 임원진 면접 전형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 그것 하나였던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후배들에게 권유하여 본다.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자신감을 얻어 볼 기회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떠한가? 내가 말하는 특별한 경험이란, 소유와 욕심 혹은 편리함이기 보다는 버림과 나눔 혹은 불편함의 가치를 선행하여 보는 특별한 장소에서의 경험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다. 나를 찾아 떠나는 경험은 미래를 위하여 투자할만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1년 이상의 시간이 무리라면, 방학기간의 두 달도 경험을 하기엔 충분하다. 대학내일신문과 같은 정보집을 샅샅이 뒤져 보면, 기회가 도처에 깔려 있다. "이번 방학에는, 책상 밖으로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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