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소제 컴퓨터 바이러스 뉴스를 접하며
필자 용환승 교수(컴퓨터학 전공) 섹션 여론7면 날짜 2000.5.15일(월)
매년 4월26일에만 동작하는 CIH(체르노빌) 바이러스는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철수바이러스 연구소에 보고된 사례 집계 결과 약 2천대의 PC가 피해를 입었고, 4억원의 수리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PC의 하드웨어는 새로 구입하면 해결되지만 파괴된 정보는 복구 불가능하며 복구에 소요된 인력과 시간, 보고되지 않은 사례를 고려하면 피해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다. 매년 100만대씩 늘어나는 PC의 숫자와 사용 인구를 감안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 체르노빌과 같이 과거에 제작된 바이러스는 미리 대처를 할 수 있지만 새롭게 탄생하는 신종 바이러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며칠 전 출현한 일명 ‘러브(LOVE) 바이러스’는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의 발전 단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진다. 우선 새 바이러스의 탐지가 과거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며, 이 소식은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적절히 대응(메일로 전달된 바이러스 편지를 보면, 첨부 파일을 열지말고 즉시 삭제)하여 더 큰 피해는 없었다.
또한 바이러스의 원제작자는 보통 추적이 불가능한데 현재 이 바이러스의 제작 용의자로 필리핀 대학생 2명을 이미 체포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디지털화되면서, 컴퓨터의 속도만큼 일처리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준다.
과거의 10년에 해당하는 변화가 인터넷 시대에는 1년 이내에 변화하고 있다. 인간은 현재 시간을 압축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의 60년 수명은 과거의 600년에 버금간다고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의 책 제목 ‘Business@the speed of thought’가 실감난다고 할 수 있다.
러브 바이러스는 ‘Love letter for you’라는 제목의 전자우편으로 전달되는데 최근의 일본 영화 ‘Love letter’를 떠오르게 한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love letter’라는 이름으로 전달된 메일이 오면, 누구나 설레이고 읽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편지를 읽고자 여는 순간 바이러스가 실행되어 즉시 자신의 메일 주소록을 검색, 모든 사람에게 다시 메일을 발송하여 전파력이 매우 빠르다.
필자도 매일 수십통의 메일을 받고 있는 지라 혹시 내게도 이 바이러스 메일이 하나 정도는 와 있겠지 하고 메일 박스를 열었으나 러브레터가 없어서 한편으로 서운(?)했다. 아마도 내 메일 주소를 알고 있는 네티즌들은 모두 조치를 잘 했구나라고 여기고 있다.
바이러스가 등장할 때마다 백신 프로그램이나 컴퓨터 보안업체의 주가가 치솟고, 또 주로 불법 복사 소프트웨어에 바이러스가 많이 감염되어 있어서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을 자연스럽게 유도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고의로 제작해서 배포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또 제작 기술에 관한 전문 서적이 출간되고 인터넷의 많은 정보들로 인하여 이제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제작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바이러스 기술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이 오히려 바이러스 제작을 부추긴다는 부정적 주장과 바이러스 소프트웨어의 원리를 잘 알아야 누구나 대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같은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바이러스를 만들기도 하고 백신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부수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인류에게 안겨준 셈이다.
대부분의 컴퓨터 바이러스는 치유하는데 사용하는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최신 바이러스 중에는 백신 제작이 불가능한 종류가 있다. 이 바이러스는 “최근에 새로운 ‘XXX’라는 바이러스가 등장했는데 이 바이러스는 ‘YYY’라는 제목의 메일로 전달된다. 그러니 이 제목을 가진 메일은 받는 즉시 삭제해야 한다”는 ‘바이러스 헛소문 메일 바이러스’이다.
대개 많은 사용자들은 이 사실을 접하면 진짜인 줄 알고 (어떻게 감히 자신의 PC를 걸고 확인하려고 실험을 하겠는가?), 주위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메일을 통해 친절하게 알려주게 된다. 바이러스란 자신을 끝없이 복제하는 기능이 핵심이다(물론 컴퓨터에 손상을 가하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메일을 통해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에 대한 메일이 끝없이 전달되므로 바로 바이러스(?)인 것이다. 단 이 바이러스는 바이러스가 수고로이(?) 자신을 복제하지 않고 인간이 복제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노이로제성 바이러스 공포분위기가 이런 희극적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영화 ‘바이러스’의 관객들은 과연 무엇이 바이러스이고, 언제 등장하는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데, 외계 바이러스 생물체가 오히려 인간에게 “You are Virus”라고 말하는 대목이 잊혀지지 않는다.